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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발진 주장, 재판에서 입증은 누구 몫인가

안성 트럭 사고 운전자가 급발진을 주장하며 국과수 감정을 앞두고 있지만, 형사에서는 검사가 유죄를, 민사 제조물책임에서는 소비자가 결함을 입증해야 하는 서로 다른 규칙이 적용된다. 국과수가 5년간 감정한 급발진 의심 364건 중 차량 결함으로 판정된 사례는 한 건도 없을 만큼 인정 문턱이 높다. 입증책임을 제조사로 넘기는 '도현이법'은 아직 국회에 멈춰 있어, 지금은 사고 직후 증거를 어떻게 확보하느냐가 재판을 좌우한다.

생활법률 상담소·2026. 09. 20.
급발진 주장, 재판에서 입증은 누구 몫인가

안성 트럭 사고, "급발진"이라는 말이 나온 뒤

2026년 9월 19일 오전 11시 18분, 경기 안성시 공도읍의 한 어린이공원에서 시 소유 1t 트럭이 '나눔의 녹색장터'를 준비하던 사람들 쪽으로 약 25m를 돌진했다. 40대 여성과 중학생 아들이 숨졌고 5명이 다쳤다. 사상자 7명은 모두 행사를 돕던 자원봉사자와 관계자였다.

트럭을 몰던 안성시청 계약직 60대 남성은 처음에 "가속페달을 제동장치로 착각했다"고 진술했다가 이후 "급발진했다"로 말을 바꿨다. 경찰은 음주·약물 반응이 없었다고 밝히고, 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 치사상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하는 한편 트럭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보내 정밀감정을 의뢰하기로 했다.

여기서 많은 사람이 궁금해하는 지점이 갈린다. 급발진이라고 주장하면 그 말을 뒤집을 책임은 경찰이나 제조사에 있는 걸까, 아니면 주장하는 사람이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걸까.

형사 재판과 민사 소송, 입증 구조가 다르다

car pedal dashcam

Photo by Unervi González on Unsplash

먼저 두 재판을 구분해야 한다. 안성 사고처럼 운전자가 형사 피고인이 되는 경우와, 피해자나 운전자가 제조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민사 소송은 입증의 규칙이 다르다.

형사 재판에서는 검사가 유죄를 증명해야 한다. 운전자가 급발진을 100% 입증하지 못하더라도, 검사가 운전자의 과실을 합리적 의심이 없을 만큼 증명하지 못하면 무죄가 나올 수 있다. 실제로 2024년 7월에는 국과수가 급발진이 아니라고 감정했는데도, 사고 당시 블랙박스에 담긴 정황 등을 근거로 운전자에게 무죄가 선고된 사례가 있었다.

반면 제조사를 상대로 한 민사 소송, 즉 제조물책임 소송에서는 결함이 있었다는 사실을 원고, 즉 소비자 측이 증명해야 한다. 이 차이가 급발진 사건을 어렵게 만드는 출발점이다.

제조물책임법이 있는데 왜 소비자가 불리한가

2002년부터 시행된 제조물책임법은 제조물의 결함으로 손해를 입은 사람에게 제조사가 배상하도록 정하고 있다. 대법원은 소비자가 결함 자체를 직접 밝히기 어려운 점을 감안해, 소비자가 그 사고는 제조사의 배타적 지배 영역에서 났고 통상 누구의 과실 없이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을 증명하면 결함을 추정할 수 있다는 완화된 법리를 세워 두었다.

문제는 급발진에서 이 문턱을 넘은 사례를 찾기 어렵다는 점이다. 원인 규명에 고도의 공학 지식이 필요하고 핵심 정보는 제조사가 쥐고 있다. 1999년 대우자동차 사건에서 1심은 결함을 인정했지만 대법원은 급발진에 대비한 안전장치가 없다는 사정만으로 통상적인 안전성을 결여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판결을 뒤집었다. 이후로도 급발진을 정면으로 인정한 판결은 사실상 자리 잡지 못했다.

국과수 감정 364건, 결함 판정은 0건

인정 판례가 드문 이유는 감정 통계에서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2019년부터 2023년까지 감정한 급발진 의심 사고는 2019년 58건, 2020년 57건, 2021년 56건, 2022년 76건, 2023년 117건으로 5년간 364건에 이른다. 이 가운데 차량 결함이 원인으로 판정된 경우는 한 건도 없었다.

감정의 핵심 자료인 사고기록장치(EDR)를 두고도 논란이 있다. 급발진 의심 사고에서는 대체로 가속페달 변위량이 100% 또는 99%로, 브레이크는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기록된다. 그런데 EDR은 차량 시스템이 인식한 값을 남기는 장치이지 운전자가 실제로 어떤 발을 어떻게 움직였는지를 그대로 담는 장치가 아니라는 지적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온다. 같은 데이터를 놓고도 운전자 오조작으로 보는 쪽과 결함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쪽의 해석이 갈린다.

입증책임을 제조사로 넘기자는 '도현이법'

이런 구조를 바꾸자는 움직임이 국회에 있다. 2022년 강릉에서 급발진 의심 사고로 숨진 12세 이도현 군의 유가족이 청원을 올리면서 시작된 이른바 '도현이법'이다. 급발진 의심 사고가 나면 사고 당사자가 아니라 자동차 제조사가 결함이 없음을 증명하도록 입증책임을 전환하는 제조물책임법 개정안이 핵심이다.

다만 진척은 더디다. 개정안은 국회 상임위 소위에 회부된 뒤 실질적인 논의가 오래 멈춰 있고, 공정거래위원회는 차량 가격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여 왔다. 지금 급발진을 주장하는 당사자에게 곧바로 유리해지는 제도는 아직 없다는 뜻이다.

급발진을 주장한다면 확보해 둘 것

제도가 바뀌기 전까지는 결국 사고 직후의 증거 확보가 재판의 향방을 크게 좌우한다. 급발진을 주장하거나 그런 주장을 마주한 입장이라면 다음을 챙겨두는 편이 낫다.

  • 사고 차량을 임의로 수리·폐차하지 말고 원상태로 보존한다. EDR 데이터와 부품 감정의 전제가 된다.
  • 페달을 촬영하는 페달 블랙박스가 있다면 영상을 즉시 확보한다. 어느 발이 어느 페달을 밟았는지 보여주는 사실상 유일한 직접 증거로 평가된다.
  • 전방·후방 블랙박스 영상과 주변 CCTV, 목격자 연락처를 빠르게 확보한다.
  • 국과수 감정을 신청하되, 감정 결과가 오조작으로 나오더라도 형사 재판에서는 그 자체로 유죄가 확정되지 않는다는 점을 이해하고 대응한다.

급발진은 주장만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형사에서는 검사의 입증이, 민사에서는 소비자의 입증이 관건이고, 현재의 감정 실무와 판례는 결함 인정에 매우 인색하다. 안성 사고의 국과수 감정 결과가 어느 쪽으로 나오든, 이 사건 역시 그 어려운 입증의 벽 앞에 서 있는 셈이다.

출처

  1. 플리마켓 덮친 1t 트럭에 모자 참변…60대 운전자 구속영장
  2. 사상자 7명 모두 자원봉사자… 안성 어린이공원 참변
  3. 올해 급발진 주장 사고 역대 최다…국과수 감정 364건 결함 0건
  4. 급발진 의심 사고 책임 법적 틀 논의…제조사 입증책임 커지나
  5. 국과수는 급발진 아니라 했지만 블랙박스 속 '차가 미쳤어' 무죄
  6. 자동차 급발진 입증책임 제조사로 바뀔까, 제조물책임법 개정
#급발진#입증책임#제조물책임법#국과수#안성 트럭 사고#도현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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