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부처분 취소소송에서 이겨도 행정청은 판결이 위법이라 지적한 그 사유로만 다시 거부할 수 없을 뿐, 다른 사유를 들어 재차 거부할 수 있다. 사증 발급이 행정청의 재량이라, 유승준 사례처럼 대법원에서 두 번 이기고도 다시 거부돼 세 번째 소송으로 이어지는 일이 생긴다. 승소 뒤에는 재처분을 기다리기만 할 것이 아니라 간접강제 신청과 새 거부처분이 기속력을 위반했는지를 함께 따져야 한다.

가수 유승준은 사증발급 거부처분을 다투는 소송에서 이미 두 차례 대법원까지 가서 최종 승소했다. 그런데도 비자는 나오지 않았다. LA 총영사가 2024년 6월 다시 발급을 거부했고, 그는 같은 해 9월 세 번째 소송을 냈다. 2026년 10월 2일 서울고법 항소심은 이번에도 그의 손을 들어줬다.
두 번 이기고도 다시 거부당하는 이 구조가 이상해 보이지만, 행정소송의 원리를 알면 예정된 결과에 가깝다. 거부 처분을 받고 소송을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승소가 곧 발급이 아니라는 점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KATRIN BOLOVTSOVA
거부처분 취소소송에서 이긴다는 것은, 법원이 '그 거부 처분이 위법하니 효력을 없앤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신청한 비자를 발급하라고 명령하는 게 아니다.
행정소송법 제30조 제1항은 취소 확정판결이 해당 행정청과 관계 행정청을 구속한다고 정한다. 이를 기속력이라 부른다. 다만 기속력이 미치는 범위는 판결에서 위법하다고 판단한 '바로 그 거부 사유'다. 판결이 지운 것은 처분 하나이지, 행정청의 거부 권한 전체가 아니다.
승소하면 행정청은 '판결의 취지에 따라' 다시 처분할 의무를 진다. 제30조 제2항이 정한 재처분 의무다. 여기서 사람들이 오해한다. '다시 처분하라'는 신청대로 발급하라는 뜻이 아니다.
행정청은 판결이 위법하다고 본 그 사유로는 다시 거부할 수 없다. 그러나 기본적 사실관계가 다른 새로운 사유를 들거나, 기존 사유의 흠을 보완하면 또 거부할 수 있다. 거부처분 이후 법령이 개정됐다면 그 새 규정을 근거로 삼은 재거부도 적법한 재처분으로 인정된다. 결론은 같은 '거부'인데 이유만 바뀌는 상황이 그래서 가능하다.
사증 발급은 행정청의 재량행위로 다뤄진다. 법원이 특정 거부 사유를 위법이라 판단해도, 행정청에게 다른 적법한 거부 사유가 남아 있으면 그 재량을 다시 행사할 수 있다는 뜻이다.
유승준 사례가 이 지점을 보여 준다. 그는 2002년 미국 시민권 취득으로 병역이 면제된 뒤 입국이 제한됐고, 2015년 재외동포(F-4) 자격으로 신청했다가 거부당했다. 소송에서 이겨도 영사가 재량으로 다시 거부하고, 그 재거부를 또 다투는 과정이 반복된 것이다. 재량행위에서는 승소가 '한 번의 거부를 무효로 돌린 것' 이상을 보장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승소가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판결이 위법이라 못 박은 사유는 행정청이 다시 꺼낼 수 없다. 거부 사유가 여러 번의 소송을 거치며 하나씩 걷혀 나가면, 행정청이 기댈 수 있는 적법한 거부 근거도 그만큼 줄어든다. 한 판의 승패가 아니라 누적된 판결이 결과를 좌우하는 구조인 셈이다.
그렇다면 승소 판결문을 받아 든 뒤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다. 처분 취소와 실제 발급 사이에는 당사자가 움직일 수 있는 단계가 있다.
첫째, 간접강제를 신청할 수 있다. 행정소송법 제34조는 행정청이 재처분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법원이 기간을 정하고 그 기간을 넘기면 지연 배상을 명할 수 있도록 한다. 재처분을 아예 미루는 상황에 쓰는 수단이다.
둘째, 새 거부처분이 기속력을 위반했는지 따진다. 행정청이 판결에서 이미 위법이라 판단된 것과 같은 사유로 다시 거부했다면, 그 재처분은 기속력에 반해 당연무효로 볼 여지가 있다. 판례는 이런 무효인 재처분을 '재처분을 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보아 간접강제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셋째, 새 거부처분을 상대로 다시 소송을 낸다. 사유가 바뀐 거부라면 그 새 사유의 위법성을 다투는 별개의 싸움이 된다. 유승준의 세 번째 소송이 바로 이 경로다.
정리하면, 거부처분 취소소송의 승소는 끝이 아니라 재처분 국면의 시작이다. 거부 사유가 여러 개일 수 있는 사안일수록, 승소 이후 어떤 사유로 다시 거부될지를 미리 짚어 두는 편이 현실적이다. 소송을 시작하기 전부터 변호사와 함께 예상 거부 사유를 정리해 두면, 재처분 단계에서 흔들리지 않고 다음 수를 준비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