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급발진이 법적으로 인정된 사례는 형사·민사를 통틀어 극히 드물다. 형사에서는 운전자가 사실상 무과실을 반증해야 하고, 민사에서는 피해자가 차량 결함과 인과관계를 입증해야 하는데 제조사와의 정보 격차가 크기 때문이다. 사고 직후 블랙박스 백업, 차량 보존, EDR 확보 같은 증거 보전이 승패를 가르는 만큼 초기 대응이 중요하다.

9월 19일 오전 안성의 한 어린이공원에서 안성시가 운영하던 1t 트럭이 나눔장터를 덮쳐 40대 여성과 중학생 아들이 숨지고 5명이 다쳤다. 운전자는 처음 "가속페달을 브레이크로 착각했다"고 진술했다가 이후 "차량이 급발진했다"고 주장을 바꾼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사고에서 운전자가 급발진을 주장하는 일은 드물지 않다. 하지만 국내에서 급발진이 법적으로 인정된 사례는 형사·민사를 통틀어 극히 드물다. 주장한다고 받아들여지는 게 아니라, 입증의 벽이 대단히 높기 때문이다.

Katherine Mihailova
급발진은 형사 사건과 민사 사건에서 다투는 상대와 입증 구조가 다르다.
형사 사건은 운전자와 검찰의 다툼이다. 원칙적으로는 검사가 운전자의 과실을 입증해야 한다. 문제는 실무다. 사고기록장치(EDR)나 블랙박스 데이터가 "운전자가 가속페달을 밟았다"는 방향으로 해석되는 경우가 많아, 운전자는 결국 "내 잘못이 아니다"를 스스로 반증해야 하는 처지에 몰린다.
민사 사건은 피해자와 제조사의 다툼이다. 제조물책임법에 따라 피해자가 제품의 결함, 손해 발생, 그리고 결함과 손해 사이의 인과관계를 증명해야 한다. 다만 법원은 운전자가 차량을 정상적으로 사용했고 손해가 제조사의 배타적 지배 영역에서 발생했다는 점이 인정되면 결함을 추정하기도 한다. 직접 증명이 어려운 만큼 간접사실을 쌓아 다투는 방식이다.
입증 완화 흐름이 있는데도 실제 승소가 드문 이유는 구조에 있다.
차량 결함을 기술적으로 증명하려면 고도의 전문 지식과 큰 비용이 든다. 반면 제조사는 방대한 기술 자료와 전문 인력을 갖고 있어, 개인이 대등하게 다투기가 애초에 어렵다. 1심에서 급발진이 의심된다는 판단이 나와도 항소심과 대법원을 거치며 뒤집히는 일이 반복돼 왔다.
핵심 증거인 EDR을 둘러싼 논란도 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EDR 기록에서 장치의 이상 유무만 판단할 뿐 그 원인까지 검사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EDR이 운전자를 보호하는 장치가 아니라 제조사에 유리하게 작동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결국 급발진 주장은 '억울함'만으로는 부족하다. 기술적 근거와 증거가 뒷받침돼야 겨우 다툼의 출발선에 선다.
그래서 사고 직후의 대응이 결과를 좌우한다.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증거가 많기 때문이다. 급발진을 주장할 상황이라면 다음을 챙겨야 한다.
무엇보다 조기에 전문 변호사의 조력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급발진 사건은 개인이 혼자 자료를 모아 다투기에는 구조적으로 불리하고, 초기 증거 보전 여부가 사실상 승패를 가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