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실종신고를 방치했더라도 국가배상은 자동으로 인정되지 않고, 수사 조치가 객관적 정당성을 잃고 현저히 불합리한 정도에 이르러야 위법으로 인정된다. 수사에 넓은 재량이 인정되는 탓에 결과의 나쁨이 아니라 과정의 불합리성이 배상 여부를 가른다. 신고 시각과 통화 기록, 정보공개로 받은 수사기록을 남겨두고 안 날부터 3년의 소멸시효 안에 청구하는 것이 핵심이다.
제주에서 5월 12일 실종된 장미란(37)씨는 104일 만인 8월 24일 한림읍의 한 야자나무 숲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수사 과정에서 인근 CCTV 118대 영상이 확보되지 못하고 삭제됐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경찰이 초기에 손을 놓은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럴 때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지가 관심사다. 결론부터 말하면 가능은 하지만 문턱이 낮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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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배상법 제2조는 공무원이 직무를 하면서 고의나 과실로 법령을 어겨 손해를 입히면 국가가 배상하도록 정한다. 문제는 경찰 수사에 넓은 재량이 인정된다는 점이다. 법원은 어떤 조치를 언제 할지에 대해 경찰의 전문적 판단 권한을 존중하기 때문에, 단순히 수사가 미흡했다는 것만으로는 위법이 되지 않는다.
기준이 되는 표현은 '객관적 정당성의 상실'이다. 대법원은 경찰의 조치가 객관적 정당성을 잃고 현저하게 불합리한 정도에 이르러야 위법으로 본다. 용의자의 도주 위험이 뚜렷한데도 최소한의 조치조차 하지 않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신고를 접수하고도 위치추적이나 CCTV 확보 같은 기본 절차를 이유 없이 미뤘다면 이 기준을 충족할 여지가 생긴다.
한 형사정책 연구가 경찰 관련 국가배상 판결을 분석한 결과, 소송 원인의 다수가 수사 업무였고 직무상 의무 위반이나 권한 불행사가 문제된 경우였다. 이 가운데 경찰의 배상 책임이 인정된 비율은 약 70%로 나타났다. 재량이 넓다고 해서 배상이 드문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인정 사례의 공통점은 '했어야 할 일을 하지 않았다'가 구체적으로 드러난다는 점이다. 한 사건에서는 경찰이 위험을 알고도 방치해 범행을 막지 못했다며 법원이 유족에게 9천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반대로 나름의 판단으로 조치를 취했으나 결과가 나빴던 경우에는 배상이 부정되는 경향이 있다. 결과의 나쁨이 아니라 과정의 불합리성이 갈림길이다.
핵심은 경찰이 무엇을 언제 했고 무엇을 하지 않았는지를 시간순으로 증명하는 것이다. 다음을 확보해두면 유리하다.
소멸시효도 놓치기 쉽다. 국가배상 청구권은 손해와 가해자를 안 날부터 3년, 불법행위가 있은 날부터 5년이 지나면 사라진다. 수사 부실이 드러난 시점을 기준으로 이르게 움직이는 편이 안전하다.
정리하면 경찰의 방치가 현저히 불합리했다는 점과 그로 인한 손해를 유족이 입증해야 하는데, 이 입증은 사후에 만들기 어렵다. 신고 초기부터 기록을 남겨두는 것이 사실상 배상 청구의 출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