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O형 환자에게 A형 혈액이 잘못 수혈돼 환자가 숨진 사고를 두고, 경찰 불송치 뒤 검찰이 재수사를 요청했다. 민사에서 병원 과실의 입증 책임은 원칙적으로 환자 측에 있지만, 대법원은 과실 행위와 손해의 개연성만 증명하면 인과관계를 추정하도록 부담을 완화했다. 혈액형 확인 같은 기본 절차 위반은 과실을 특정하기 쉬운 유형인 만큼, 진료기록과 시간대별 경위부터 확보하는 것이 핵심이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O형 환자에게 A형 혈액이 수혈됐다. 다른 환자와 혈액 바코드가 뒤바뀐 탓이었다. 2024년 9월 심정지로 실려 온 50대 여성은 약 한 달 뒤 숨졌고, 유족은 의료진을 업무상과실치사로 고소했다. 경찰은 불송치했지만 최근 검찰이 재수사를 요청하면서 사건은 다시 열렸다.
의료사고를 겪은 사람들이 가장 먼저 부딪히는 벽이 여기 있다. 병원의 잘못을 증명할 책임이 환자 쪽에 있는가, 병원 쪽에 있는가.

KATRIN BOLOVTSOVA
민사 손해배상 소송의 기본 구조부터 보자. 배상을 청구하는 사람, 즉 원고가 상대의 과실과 그 과실로 손해가 생겼다는 인과관계를 증명해야 한다. 의료사고에서 원고는 환자나 유족이다. 원칙만 놓고 보면 무거운 짐이다.
문제는 정보의 불균형이다. 무슨 처치가 어떤 순서로 이뤄졌는지는 병원 기록에 담겨 있고, 판단에는 전문 지식이 필요하다. 환자가 의료진의 과실을 처음부터 끝까지 스스로 밝히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래서 법원은 입증의 문턱을 낮춰 왔다. 대법원은 2023년, 환자 측이 진료상 과실로 평가될 수 있는 행위가 있었다는 점과 그 과실이 손해를 낳을 개연성이 있다는 점을 증명하면 과실과 손해 사이의 인과관계를 추정한다는 법리를 확인했다.
핵심은 '추정'이라는 단어다. 입증 책임이 병원으로 통째로 넘어간 것은 아니다. 환자는 여전히 과실 행위와 개연성까지는 증명해야 한다. 다만 그 지점을 넘기면, 이번엔 병원이 "다른 원인 때문이었다"는 것을 제시해 추정을 깨야 하는 위치에 선다. 부담의 무게중심이 옮겨 가는 셈이다.
이번 사건에서 경찰이 불송치한 배경도 이 구조로 설명된다. 형사인 업무상과실치사는 잘못된 처치와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가 합리적 의심이 없을 정도로 증명돼야 한다. 환자가 심정지와 폐색전증 같은 중한 상태였다면, 사망의 원인을 오수혈 하나로 좁히는 데 더 엄격한 잣대가 걸린다.
민사는 앞서 본 대로 개연성 단계에서 인과관계를 추정한다. 그래서 형사에서 무혐의로 끝난 사건이 민사에서는 배상 책임이 인정되는 일이 생긴다. 두 절차의 결론이 갈릴 수 있다는 점을 알아 두는 게 대응의 출발이다.
의료과실 중에서도 유형에 따라 입증 난이도가 다르다. 치료 방법의 적정성이나 판단의 당부를 다투는 사건은 전문적 평가가 복잡하게 얽힌다. 반면 혈액형을 확인해 맞는 피를 수혈한다는 것은 의료의 가장 기본적인 확인 절차다. 그 절차가 지켜지지 않았다는 사실 자체가 과실 행위를 비교적 또렷하게 가리킨다.
입증의 재료는 결국 기록이다. 대응은 자료 확보에서 시작한다.
소송이 부담된다면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 조정·중재를 통해 전문 감정을 받아 볼 수 있다. 과실 여부를 먼저 가늠하고, 이후 민사와 형사 중 어느 절차로 갈지 판단하는 편이 현실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