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 축소·은폐 지시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가 우선 검토되지만, 대법원이 엄격히 보는 '의무 없는 일' 요건 때문에 성립 여부가 갈린다. 수사를 의도적으로 방치하면 직무유기, 특정인을 빼돌리거나 자료를 없애면 범인도피·증거인멸이 별도로 성립한다. 지시를 따른 실무자는 위법한 명령에 복종의무가 없고, 강요당한 피해자인지 적극 가담한 공범인지에 따라 책임이 갈린다.

2026년 9월 2일 광주지검은 박성주 전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 등 4명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 일선 수사팀이 두 사건을 함께 수사하자고 올렸는데도, 윗선에서 "강간 사건은 조용히 하자", "오픈되지 않게 하라"며 사건을 서로 다른 부서로 쪼개 수사하도록 지시했다는 것이 검찰 판단이다. 경찰의 초동 대응 부실과 스토킹 신고 미접수 문제가 드러나는 것을 막으려 했다는 혐의다.
수사기관 내부에서 사건을 줄이거나 덮으라는 지시가 나왔다는 뉴스는 종종 접하지만, 정작 그 지시가 어떤 죄가 되는지는 헷갈린다. 하나씩 짚어본다.

Paul Bill
수사 축소 지시에 가장 먼저 검토되는 죄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다. 형법 제123조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남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권리행사를 방해한 경우를 처벌한다. 법정형은 5년 이하 징역, 10년 이하 자격정지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이다.
여기서 성립 여부가 갈리는 지점이 하나 있다.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했는지다. 대법원은 이 요건을 엄격하게 본다. 부하가 원래 하던 직무 범위 안의 일을 지시한 정도라면, 아무리 부당해도 '의무 없는 일'로 보기 어려워 직권남용이 성립하지 않을 수 있다. 큰 사건에서 직권남용 무죄가 나오는 대목이 대부분 이 요건이다. 그래서 검찰도 지시가 부하의 정당한 직무 범위를 벗어나 억지로 시킨 것임을 입증하는 데 공을 들인다.
지시가 적극적인 강요라기보다 해야 할 수사를 의도적으로 놓아버린 형태라면 직무유기가 문제 된다. 형법 제122조 직무유기는 정당한 이유 없이 직무를 '의식적으로 방임하거나 포기'한 경우에 성립하고, 법정형은 1년 이하 징역·금고 또는 3년 이하 자격정지다.
주의할 점은 단순히 일을 대충 했다고 직무유기가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판례는 태만이나 착각, 형식적·소홀한 처리는 직무유기가 아니라고 본다. 알면서도 수사를 놓았다는 '의식적 방임'이 있어야 한다.
축소의 방식이 더 나아가면 죄명도 바뀐다. 특정인을 빠져나가게 할 목적이었다면 범인도피, 자료를 없앴다면 증거인멸이 별도로 성립한다. 실제로 이번 사건에서 광산경찰서 강력팀장은 증거인멸·직권남용·직무유기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참고로 하나의 행위가 직무유기와 범인도피에 동시에 해당하면, 검사가 재량으로 둘 중 하나로만 기소할 수 있다는 것이 판례다.
윗선의 지시를 따른 실무자의 책임은 상황에 따라 크게 갈린다. 출발점은 이렇다. 공무원의 복종의무는 '적법한' 직무명령에 대해서만 있다. 위법한 지시라면 따를 의무 자체가 없다.
그렇다면 따랐으면 무조건 처벌인가. 그건 아니다. 위법한 지시에 따랐다고 형사책임이 자동으로 면제되지는 않지만, 반대로 자동으로 공범이 되는 것도 아니다. 판단은 그 실무자가 어느 위치였는지에 달린다. 상급자의 강한 압박 때문에 '의무 없는 일'을 억지로 하게 된 처지라면, 오히려 상급자 직권남용의 피해자로 분류될 수 있다. 강요된 행위로 볼 만한 사정이 인정되면 책임이 줄거나 사라질 여지도 있다. 반대로 사정을 알면서 적극 가담하거나 축소를 주도했다면 공범으로 처벌된다. 같은 지시를 받았어도 결론이 달라지는 이유다.
이런 사건은 대개 고발이나 자체 인지로 시작해, 전담 수사팀 구성과 입건, 검찰 송치와 보완수사를 거쳐 기소 여부가 정해진다.
이번 장윤기 사건도 5월 7일 일선 수사팀이 병합 방침을 보고한 뒤 5월 14일과 22일 사건이 따로 송치됐고, 검찰의 보완수사를 거쳐 9월 2일 기소로 이어졌다. 넉 달 가까이 걸린 셈인데, 직권남용의 '의무 없는 일' 요건처럼 입증이 까다로운 부분이 있어 이런 사건은 시간이 걸린다.
한 가지는 분명히 해두는 게 좋다. 기소는 재판에 넘겼다는 뜻이지 유죄가 확정됐다는 뜻이 아니다. 실제 처벌 수위는 앞으로의 재판에서 직권남용과 직무유기 요건이 어떻게 판단되는지에 따라 정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