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검에서 사인 불명이 나오면 타살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는 뜻이라, 경찰은 사건을 닫지 않고 추가 감정과 정황 수사로 재수사를 이어간다. 제주 실종 사건처럼 초기에 자살이나 사고로 예단하면 현장과 증거가 훼손돼 뒤늦게 사인을 밝히기 어려워지는 문제가 남는다. 초동수사가 부실했다면 고소·고발과 감찰 진정, 국가배상 청구로 책임을 물을 수 있지만, 배상은 현저히 불합리했다는 입증이 필요해 문턱이 높다.

부검에서 '사인 불명'이라는 결과가 나오면 수사가 끝났다고 여기기 쉽다. 사실은 반대에 가깝다. 사망 원인을 특정하지 못했다는 것은 타살 가능성을 배제할 근거도 아직 없다는 뜻이라, 경찰은 사건을 닫는 대신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를 이어가게 된다.
제주에서 실종 104일 만인 8월 24일 시신으로 발견된 30대 여성 사건이 그런 경우다. 경찰은 발견 직후 자살에 무게를 뒀고 8월 27일엔 현장 재연으로 '목맴사 가능'이라고 밝혔지만, 8월 31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정 결과를 근거로 "시신이 부패해 사인 불명"이라며 판단을 바꿨다. 국가수사본부장도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 중이라고 했다.
절차적으로 변사사건은 형사소송법 제222조에 따라 관할 지방검찰청 검사의 검시 대상이 되고, 사인을 밝힐 필요가 있으면 법원 영장을 받아 국과수에서 부검한다. 감정서가 불명으로 나오더라도 조직·독성 등 추가 감정과 통신·계좌·폐쇄회로(CCTV) 기록 같은 정황 수사로 사인을 좁혀 간다. 불명은 '결론'이 아니라 '아직 못 밝혔다'는 상태에 가깝다.

거열 박
문제는 초기 판단이 뒤이은 수사의 방향을 좁힌다는 데 있다. 사고나 자살로 일찍 결론을 내리면 현장 보존, 증거 수집, 관련자 조사의 강도가 달라진다. 나중에 그 전제가 틀린 것으로 드러나도, 이미 훼손된 초기 증거는 되돌리기 어렵다.
제주 사건에서 지적된 대목이 바로 이 지점이다. 경찰은 앞선 실종 신고를 허위로 종결했고, 그 사이 104일이 흐르는 동안 시신이 부패해 사인 규명 자체가 어려워졌다. 경찰이 담당 경찰관이 처리한 실종 신고 298건을 전수조사하기로 한 것도 초기 대응의 신뢰가 흔들렸기 때문이다. 성급한 예단은 단순한 실수로 끝나지 않고, 진실을 확인할 시간과 증거를 함께 앗아간다.
초동수사가 부실했다고 판단되면 책임을 묻는 경로는 크게 세 갈래다.
먼저 형사 책임이다. 담당 경찰관에게 직무유기나 허위공문서작성 등의 혐의가 있다고 보면 고소·고발할 수 있고, 검사가 불기소하면 항고와 재정신청으로 다툴 수 있다. 둘째는 감찰과 징계다. 경찰청·국가수사본부의 감찰이나 국민신문고, 국가인권위원회 진정을 통해 감사와 징계를 요청하는 방법이다.
셋째는 국가배상이다. 국가배상법은 공무원이 고의·과실로 법령을 어겨 손해를 끼치면 국가가 배상하도록 정한다. 다만 문턱이 높다. 법원은 수사에 경찰의 재량을 폭넓게 인정하기 때문에, 그 조치가 "객관적 정당성을 잃고 현저하게 불합리했다"는 점을 피해자 측이 입증해야 배상이 인정된다. 실제로 2026년 2월 법원은 부산 돌려차기 사건의 초기 부실수사를 인정해 국가가 피해자에게 1,5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지만, 이런 인용 사례는 흔치 않다.
사인 불명은 사건의 끝이 아니라 재수사의 출발점이다. 유족이라면 부검 감정서와 수사 기록 열람을 요청하고, 초기 종결과 판단의 근거가 무엇이었는지부터 확인하는 것이 책임을 묻는 첫 단계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