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의 초동대응이 미흡했다고 해서 곧바로 국가배상이 인정되는 것은 아니며, 수사 재량을 감안해 대응이 객관적 정당성을 잃고 현저히 불합리한 수준이어야 배상이 인정된다. 담당 경찰관에 대한 파면 같은 개인 책임 추궁과 국가를 상대로 한 배상 청구는 서로 별개의 절차로 나뉘어 진행된다. 청구를 염두에 둔다면 신고 접수 기록과 폐쇄회로(CC)TV 등 초기 자료부터 서둘러 확보하는 것이 승패를 가른다.

가족이 실종됐는데 경찰이 늑장을 부렸다면, 억울함은 당연하다. 다만 법이 국가배상을 인정하는 기준은 '아쉬웠다'보다 한참 높다.
국가배상법 2조 1항은 공무원이 직무를 집행하면서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을 위반해 남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에 국가가 배상하도록 정한다. 여기서 '법령 위반'은 명문 규정을 어긴 것뿐 아니라 행위가 객관적 정당성을 잃은 경우까지 포함한다. 문제는 수사에는 경찰의 전문적 재량이 인정된다는 점이다. 법원은 경찰의 직무수행이 객관적 정당성을 잃고 '현저히 불합리한' 정도에 이르러야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해 왔다. 단순히 더 빨리 수색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만으로는 문턱을 넘기 어렵다.
최근 알려진 제주 사건은 이 문턱을 가늠하게 한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실종 신고를 접수한 경찰관이 2시간 30분 만에 이를 '교통사고 사망'으로 허위 종결하고, 신고자에게는 당사자가 위치 밝히기를 거부했다는 거짓 설명을 했다. 이런 허위 처리와 기록 삭제는 단순 판단 착오와는 성격이 다르다.

Bruna Santos
많은 사람이 헷갈리는 지점이 여기다. 담당 경찰관을 파면하라는 요구와 국가에 돈을 물리는 국가배상은 별개의 트랙에서 굴러간다.
국가배상책임과 공무원 개인의 배상책임은 서로 다르다. 국가가 배상하더라도, 그 공무원에게 고의나 중과실이 있으면 국가는 나중에 구상권을 행사해 돈을 되받을 수 있다. 반대로 공무원에게 경과실만 있었다면 그 개인은 피해자에게 직접 배상할 책임을 지지 않는다. 파면·해임 같은 징계, 형사처벌, 그리고 국가배상은 각각 다른 절차로 진행되므로, 담당자가 징계를 받았는지와 내가 배상을 받을 수 있는지는 따로 판단해야 한다.
즉 '담당자가 잘렸으니 배상도 되겠지'도, '아무도 처벌 안 됐으니 배상도 안 되겠지'도 성립하지 않는다.
국가배상을 청구하는 길은 두 가지다. 하나는 법무부 산하 배상심의회에 배상 신청을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심의회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민사법원에 소송을 내는 것이다. 과거에는 심의회를 먼저 거쳐야 했지만, 지금은 피해자가 선택할 수 있다. 소송을 택하면 일반 민사소송과 같은 절차를 밟는다.
시간 제한도 있다. 국가배상청구권은 손해와 가해자를 안 날부터 3년, 불법행위가 있은 날부터 5년이 지나면 소멸한다. 사건이 오래됐다면 이 기간부터 따져봐야 한다.
국가배상 소송은 '경찰이 현저히 불합리하게 행동했다'는 점을 피해자 쪽이 입증해야 한다. 그래서 초기 자료 확보가 사실상 결과를 좌우한다.
확보해 두면 좋은 것들을 정리하면 이렇다.
이 중 상당수는 시간이 지나면 삭제되거나 덮어써진다. 앞선 제주 사건에서도 시스템상 기록이 지워졌다는 경찰 답변이 문제가 됐다. 그래서 개인이 직접 확보하기 어려운 공적 기록은 정보공개청구 제도를 활용해 서둘러 요청해 두는 편이 안전하다.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뿐 아니라 누구나 청구할 수 있는 제도이므로, 사건 직후 기록 보존을 요청하는 것이 뒤늦은 후회를 줄인다.
정리하면, 경찰 부실대응에 대한 국가배상은 '가능은 하지만 문턱이 높은' 권리다. 대응이 현저히 불합리했는지, 시효는 남았는지, 입증할 자료를 쥐고 있는지가 관건이며, 이 판단은 사안마다 달라 변호사와 함께 초기 자료를 검토하는 것이 현실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