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사소송에서 이겨도 판결 확정과 강제집행은 별개여서, 상대에게 재산이 없거나 숨기면 판결문만 남을 수 있다. 최근 북한에 446억원 배상 판결이 나왔지만 집행 수단이 없다는 사례가 이 구조를 그대로 보여준다. 채권자는 재산명시·재산조회·채무불이행자명부 등재로 상대 재산을 찾고 압류로 이어가야 하며, 은닉 정황이 있다면 사해행위취소도 함께 따져야 한다.
민사소송에서 이겨 판결이 확정되면 절반은 끝났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확정판결은 "받을 권리가 있다"는 국가의 확인일 뿐, 법원이 상대 통장에서 돈을 빼서 건네주지는 않는다.
판결로 얻는 것은 집행권원이다. 여기에 집행문을 받아 채권자가 직접 압류·경매 같은 강제집행을 신청해야 실제 회수가 시작된다. 확정판결과 지급명령, 집행력 있는 공정증서가 모두 집행권원이 된다. 문제는 이 단계에서 붙잡을 재산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Photo by Emil Kalibradov on Unsplash
이 구조를 극단적으로 보여준 것이 최근 판결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46부는 2026년 9월 16일 북한이 2020년 6월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한 데 대해 446억2641만원을 배상하라고 선고했다. 정부가 2023년 6월 소장을 낸 지 약 3년 3개월 만의 원고 승소다.
그러나 통일부는 배상 이행을 강제할 수단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화 재개를 기대한다는 말뿐이었다. 앞서 2020년 7월 국군포로들이 북한을 상대로 4200만원 승소 판결을 받았을 때도, 북한 저작권료 약 20억원을 배상에 쓰려 했지만 법원이 이를 추심금으로 쓸 수 없다고 판단하면서 막혔다.
상대가 국가라 특수해 보이지만, 원리는 개인 채권자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판결문이 아무리 커도 집행할 재산이 없으면 종이에 가깝다.
첫째, 무자력이다. 상대에게 압류할 부동산도 예금도 소득도 없으면 절차를 밟아도 회수할 것이 없다.
둘째, 재산 은닉이다. 소송 전후로 부동산을 가족 명의로 넘기거나 예금을 미리 빼내는 경우다. 겉으로는 무자력처럼 보이지만 실제 재산이 어딘가로 옮겨진 상태다.
셋째, 해외 소재다. 재산이나 상대 본인이 외국에 있으면 국내 판결만으로 곧바로 집행하기 어렵고, 별도의 승인 절차가 필요하다.
상대의 재산을 이미 안다면 곧바로 압류에 들어가면 된다. 모를 때 쓰는 첫 카드가 재산명시신청이다. 법원이 채무자에게 자기 재산목록을 직접 제출하도록 명하는 절차다.
채무자가 명시기일에 나오지 않거나 거짓 목록을 내면 감치, 즉 구금까지 가능하고 채무불이행자명부 등재로도 이어진다. 명부에 오르면 금융거래에 제약이 생겨 간접적인 압박이 된다. 집행권원을 받고 6개월이 지나도록 갚지 않으면 명부 등재를 신청할 수 있다.
채무자가 협조하지 않을 때는 재산조회가 있다. 채무자 동의 없이 법원이 공공기관과 금융기관 전산망을 통해 부동산·예금·자동차 등을 조회하는 제도다. 재산명시로 협조를 압박하고, 그래도 안 되면 재산조회로 직접 찾는 순서로 움직인다.
재산을 아는 경우라면 재산명시를 건너뛰고 바로 압류로 가는 편이 빠르다. 반대로 재산 정보가 전혀 없으면 재산명시신청과 재산조회를 먼저 걸어 대상을 확보한 뒤 압류로 넘어가는 것이 현실적이다.
가족 명의 이전이나 예금 인출 같은 은닉 정황이 뚜렷하다면 압류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때는 넘긴 재산을 되돌리는 사해행위취소소송이나 강제집행면탈 문제를 함께 검토해야 한다.
정말로 상대가 무자력인 경우엔 당장 회수가 어렵더라도 시효 관리가 중요하다. 확정판결로 정해진 채권의 소멸시효는 10년이므로, 그 안에 상대의 사정이 바뀔 때를 대비해 권리를 살려두는 편이 낫다. 승소는 회수의 출발선이지 도착선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