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11일 서울중앙지법은 이종섭 전 국방장관을 호주대사로 임명한 윤석열 전 대통령 등 6명에게 범인도피 등 혐의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범인도피죄가 성립하려면 은닉에 준하는 도피 행위와 도피 목적이 있어야 하는데 대사 임명은 인사권 행사로 볼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공무원의 인사 조치가 도피죄가 되는지는 그 처분이 수사기관의 신병 확보를 실제로 어렵게 만들려는 의도였는지에 달려 있다.
2026년 9월 1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조형우 부장판사)는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을 호주대사로 임명해 해외로 내보냈다는 범인도피 등 혐의로 기소된 윤석열 전 대통령과 전직 고위 인사 등 6명 전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가 무죄의 근거로 삼은 것은 "임명이 도피에 해당하느냐"라는 지점이었다. 대사 임명이라는 인사 행위가 범인도피죄에서 말하는 '도피시키는 행위'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 문턱이 무엇인지 알아야 이번 판단이 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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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법 제151조는 벌금 이상의 형에 해당하는 죄를 지은 사람을 숨겨주거나 도피하게 한 사람을 처벌한다. 여기서 핵심은 '도피하게 한다'는 말의 범위다.
대법원 판례는 이 행위를 은닉에 준하는 정도, 즉 수사기관이 대상자를 발견하거나 체포하는 것을 곤란하게 만드는 적극적 행위로 좁혀 해석해 왔다. 단순히 도피에 도움이 되는 일을 했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도피시키려는 의도, 즉 상대가 처벌받을 사람임을 알면서 수사를 피하게 하려는 목적이 함께 인정돼야 한다. 요건이 행위와 고의 두 축으로 짜여 있는 셈이다.
재판부는 두 축 모두에서 검찰(특검)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행위 측면에서는 호주대사 임명이 "반드시 도피 목적만 있다고 보이지는 않고, 인사권 행사의 일환으로 임용됐다고 볼 여지가 없지 않다"고 봤다. 정식 절차를 밟은 공직 임명이라는 외형이, 신병 확보를 방해하는 은닉성 행위와는 성격이 다르다고 본 것이다.
고의 측면에서는 윤 전 대통령이 이종섭 전 장관의 형사처벌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인식하고 공수처 수사를 정면으로 막으려 했다고 추단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출국금지 사실을 몰랐을 가능성이 있고, "논란이 되는 사람"이라는 추상적 인식에 그쳤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군인권센터는 "수사가 충분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오히려 무죄 근거로 삼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며 즉각 항소를 촉구했다. 사실관계와 별개로 이 판단은 1심이며, 특검이 항소하면 상급심에서 다시 다퉈질 수 있다.
같은 공무원 인사라도 도피죄가 되는 경우와 아닌 경우가 갈린다. 이번 판결의 논리를 뒤집어 보면 대략 이런 기준이 나온다.
세 가지가 함께 인정될수록 '인사권 행사'라는 외형은 도피 행위로 평가될 여지가 커진다. 반대로 절차의 정당성과 인사 수요가 뚜렷하고 처벌 가능성 인식이 약하면, 이번처럼 도피의 고의를 인정하기 어려워진다. 결국 이름이 인사냐 도피냐가 아니라, 그 처분이 무엇을 노렸고 실제로 수사를 얼마나 막았는지가 판단의 실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