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재배당은 대법원 예규에 따라 법원이 직권으로 사건을 다른 재판부에 다시 맡기는 내부 절차이고, 기피신청은 당사자가 민사소송법·형사소송법상 권리로 재판부 교체를 요구하는 신청이다. 재배당은 연고 관계 변호사 선임이나 착오배당처럼 법원이 판단하는 사유에서 이뤄져 당사자가 좌우할 수 없는 반면, 기피는 불공평한 재판을 할 염려라는 객관적 사정을 3일 내 서면으로 소명해야 한다. 재판부의 불공정을 정면으로 다투려면 기피가 정식 수단이지만 요건과 절차의 문턱이 높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재판 공정성 논란이 불거지면 "재판부를 바꾸는 것"이라는 점에서 재배당과 기피신청이 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둘은 움직이는 주체부터 다르다.
재배당은 법원이 직권으로 하는 내부 사무처리다. 사건을 어느 재판부에 맡길지 정하는 절차의 연장선이고, 근거도 법률이 아니라 대법원 예규인 '법관 등의 사무분담 및 사건배당에 관한 예규'에 있다. 사건배당을 주관하는 쪽이 예규에 정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보면 사건을 다른 재판부로 다시 배당한다.
반면 기피신청은 당사자가 법률상 권리로 하는 신청이다. 민사소송법 제43조는 당사자가 "공정한 재판을 기대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을 때 기피를 신청할 수 있다고 정한다. 형사에서도 검사·피고인·변호인이 형사소송법 제18조에 따라 신청할 수 있다. 즉 재배당은 법원이 알아서 하는 것, 기피는 당사자가 요구하는 것이다.

거열 박
재배당은 당사자가 "이 재판부가 싫다"고 해서 이뤄지는 제도가 아니다. 예규가 정한 사유에 해당할 때 법원이 판단해 처리한다.
대표적인 예가 재판부와 연고 관계가 있는 변호사가 선임되는 경우다. 공정성 시비를 예방하기 위해 사건을 다른 재판부로 돌린다. 최근 법원은 형사재판에서 이런 재배당 원칙을 넓게 적용하기로 한 바 있다. 이 밖에 사건이 엉뚱한 재판부로 잘못 배당된 착오배당, 청구취지가 바뀌어 사건 종류 자체가 달라진 경우, 제척·기피·회피로 재판부에 결원이 생긴 경우 등이 재배당 사유가 된다.
정리하면 재배당은 배당의 오류를 바로잡거나 공정성 시비를 미리 차단하기 위한 법원 내부 조치에 가깝다. 당사자가 신청해서 관철하는 절차가 아니라는 점이 핵심이다.
당사자가 재판부 자체를 문제 삼고 싶다면 쓰는 제도는 따로 있다. 세 가지로 나뉜다.
제척은 법이 정한 사유에 해당하면 신청 없이도 그 법관이 당연히 배제되는 것이다. 법관이 사건 당사자이거나 친족인 경우처럼 유형이 정해져 있다(민사소송법 제41조, 형사소송법 제17조). 회피는 법관 스스로 물러나는 것으로, 감독권 있는 법원의 허가를 받는다.
당사자가 능동적으로 쓸 수 있는 카드는 기피다. 세 제도의 차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구분 | 재배당 | 기피 | 회피 |
|---|---|---|---|
| 누가 | 법원 직권 | 당사자 신청 | 법관 스스로 |
| 근거 | 대법원 예규 | 민소법43·형소법18 | 민소법49·형소법24 |
| 결정 | 배당 주관자 | 소속 법원 합의부 | 감독 법원 허가 |
기피는 신청만 하면 되는 게 아니다. "공정한 재판을 기대하기 어려운 사정", 형사에서는 "불공평한 재판을 할 염려"가 있어야 한다. 판례는 이를 통상인이 보기에 불공정하다고 볼 만한 객관적 사정으로 좁혀 왔다. 단순히 재판 진행이 불리하거나 감정이 상했다는 이유만으로는 인정되기 어렵다.
절차도 정해져 있다. 합의부 법관에 대한 기피는 그 합의부에, 단독판사에 대한 기피는 그 법관에게 이유를 밝혀 신청하고, 이유와 소명 방법은 신청한 날부터 3일 안에 서면으로 내야 한다(민사소송법 제44조). 신청에 대한 재판은 기피당한 법관이 아니라 그가 속한 법원의 합의부가 맡는다(형사소송법 제21조).
기피신청이 들어오면 원칙적으로 재판이 확정될 때까지 소송절차가 멈춘다. 다만 신청이 각하되거나, 종국판결을 선고하거나, 급속을 요하는 행위를 해야 할 때는 절차를 진행할 수 있다(민사소송법 제48조). 반대로 소송을 지연시키려는 목적이 명백한 신청은 신청받은 법관이 곧바로 기각할 수 있다(형사소송법 제20조).
그래서 판단 기준은 이렇게 정리된다. 배당 오류나 연고 관계 같은 사정이라면 굳이 나설 필요 없이 법원의 재배당을 기다리면 된다. 그러나 재판부의 불공정을 정면으로 다투려면 객관적 사정을 갖춰 기피를 신청해야 하고, 그 문턱과 절차가 만만치 않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