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대 대법원장이 9월 22일 손봉기 부장판사 재제청을 거부하면서 노태악 전 대법관 퇴임 후 이어진 대법관 공석이 200일을 넘겼다. 대법관은 대법원장이 제청하고 대통령이 임명하는 구조여서 제청이 없으면 임명을 강행할 수 없고, 이 교착을 곧바로 풀 헌법 절차도 마땅치 않다. 권한쟁의심판이 실제로 청구되는지, 공석이 김건희·내란 관련 전원합의체 사건 심리에 어떤 변수로 작용하는지 지켜봐야 한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9월 22일 손봉기 대구지법 부장판사를 다시 제청해 달라는 대통령실 요구를 거부했다. "재제청할 헌법적 근거를 찾을 수 없다"는 이유였다. 노태악 전 대법관이 3월 초 퇴임한 뒤 비어 있던 대법관 자리는 이로써 200일을 넘겼다.
겉으로는 특정 후보를 둘러싼 다툼이지만, 실제 쟁점은 "대법관을 최종적으로 누가 정하느냐"다. 결론부터 말하면, 지금 구조에서는 어느 한쪽이 단독으로 밀어붙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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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104조 2항은 대법관을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정한다. 임명에는 국회 동의도 필요하다. 즉 대법관 한 명이 자리에 앉기까지 대법원장의 제청, 대통령의 임명, 국회의 동의라는 세 관문을 거친다.
핵심은 순서다. 대통령에게 임명권이 있어도 대법원장이 제청하지 않으면 임명 절차 자체가 시작되지 않는다. 반대로 대법원장이 제청해도 대통령이 임명하지 않으면 대법관이 되지 못한다. 두 권한은 상하 관계가 아니라 서로를 막을 수 있는 대등한 관계에 가깝다.
이번 갈등도 여기서 나왔다. 대법원장은 8월 18일 손봉기 부장판사를 제청했지만, 대통령실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며 8월 28일 재제청을 요청했다. 대법원은 구체적 사유 없이 다시 제청하라는 요구를 받아들이면 제청권이 침해된다고 본다. 대통령실은 대법원장이 임명권을 무력화하고 있다고 본다. 지난 1월 후보추천위가 4명을 올린 뒤 7개월간 물밑 협상이 이어졌지만 접점을 찾지 못했다.
법적으로 거론되는 통로는 헌법재판소의 권한쟁의심판이다. 국가기관 사이에 권한의 존재나 범위를 두고 다툼이 생겼을 때 헌재가 가려 주는 절차다. 대통령실이 "제청 의무를 이행하라"며 청구하는 방식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다만 실제로 이 길로 갈지는 불투명하다. 청와대는 9월 23일 헌재 권한쟁의심판 청구를 검토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앞서 검토 중이라는 보도가 나왔지만 공식 입장은 부인 쪽으로 정리된 셈이다. 대신 국민의힘이 이미 "대통령실의 재제청 요구가 국회의 임명동의권과 의원들의 심의·표결권을 침해했다"며 헌재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한 상태다.
권한쟁의심판이 진행되더라도 결론까지는 시간이 걸리고, 그동안 공석은 더 길어진다. 청구하는 쪽에서도 헌재가 대법원 손을 들어 주면 오히려 정치적으로 불리해질 수 있다. 결국 헌법에 이 다툼을 곧바로 끝낼 강제 조항은 없다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법원조직법상 대법관 3분의 2 이상이 모이면 심리와 선고를 할 수 있다. 한 자리가 비어도 정족수 자체가 무너지지는 않는다. 전원합의체가 멈추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문제는 부담이다. 남은 대법관들이 소부 사건까지 나눠 맡으면서 상고심 처리가 밀리고, 재판 지연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법조계에서 나온다. 지금 전원합의체에는 김건희 여사의 자본시장법 위반 의혹 사건, 한덕수 전 국무총리와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의 내란 관여 의혹 사건 등 무게 있는 사건들이 걸려 있다. 대법관 한 명의 시각이 결론을 가를 수 있는 사건에서 공석은 변수가 된다.
정치권은 이 갈등을 각자의 언어로 끌어들였다. 여당의 김민석 대표는 재제청 거부를 "내란 잔불"이라 표현했고, 야당의 장동혁 대표는 이재명 대통령이 검토 중인 내란 특별수사본부를 두고 "조 대법원장 겁박용"이라고 맞섰다.
당분간은 두 가지를 지켜보는 것이 실질적이다. 하나는 권한쟁의심판이 실제로 청구되는지, 청구된다면 누가 어떤 권한 침해를 주장하는지다. 청와대가 직접 나서느냐, 국민의힘 청구만 진행되느냐에 따라 갈등의 성격이 달라진다.
다른 하나는 공석이 전원합의체 사건 심리에 실제로 얼마나 영향을 주는지다. 정족수는 유지되지만, 굵직한 사건의 선고 시점이 미뤄지거나 심리 구성이 바뀐다면 그때는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와 직결되는 문제가 된다. 새 대법관 제청이 다시 나오는지, 후보가 손봉기 부장판사인지 다른 인물인지도 갈등의 향방을 보여 줄 신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