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괴롭힘이나 과로로 가족을 잃었을 때 책임은 형사, 민사, 산재 세 갈래로 갈리며 각각 입증해야 할 내용이 다르다. 괴롭힘 행위 자체를 처벌하는 형벌 조항은 없어서, 폭언은 형법상 모욕·협박 등으로, 회사의 방치는 손해배상과 과태료로 나누어 다퉈야 한다. 어느 책임을 묻든 녹취와 근무시간 기록 같은 증거가 결과를 가르므로 무엇을 남겨야 하는지부터 확인하는 것이 먼저다.
폭언과 과로 끝에 가족을 잃은 유족이 가장 먼저 마주하는 벽은, 책임을 물을 곳이 하나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가해자 개인에게 물을 책임과 회사에 물을 책임이 다르고, 형사 처벌과 민사 배상, 산업재해 인정은 각각 다른 기관에서 다른 기준으로 판단한다. 같은 사건이라도 어느 문을 두드리느냐에 따라 입증해야 할 내용이 달라진다.
그래서 "처벌받게 할 수 있나"와 "배상받을 수 있나", "산재로 인정받을 수 있나"는 따로 떼어 생각해야 한다. 세 갈래를 먼저 구분해 두면 어디에 힘을 쏟을지 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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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로 많이 오해하는 지점이다. 근로기준법 제76조의2는 직장 내 괴롭힘을 금지하지만, 괴롭힘 행위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가해자를 형사처벌하는 조항은 없다. 금지 규정은 있는데 그 행위 자체를 벌하는 형벌은 비어 있는 구조다.
대신 두 갈래로 길이 열린다. 하나는 폭언의 내용이다. 모욕, 명예훼손, 협박, 폭행에 해당하는 발언이나 행동이었다면 괴롭힘 금지법이 아니라 형법의 해당 죄명으로 고소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신고에 대한 보복이다. 근로기준법 제76조의3은 괴롭힘을 신고한 사람이나 피해자에게 해고 등 불리한 처우를 하는 것을 금지하고, 이를 어기면 제109조에 따라 3년 이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괴롭힘을 둘러싼 형사 책임 중 가장 무거운 쪽은 괴롭힘 자체가 아니라 이 보복 금지 위반이다.
사업주가 조사·피해자 보호·가해자 징계 같은 조치 의무를 지키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2021년 3월 국회를 통과한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조치 의무를 이행하지 않거나 조사 과정의 비밀을 누설하면 500만원 이하 과태료가 부과된다. 사용자 본인이 괴롭힘을 한 경우 과태료 상한은 1천만원이다. 다만 과태료는 전과가 남는 형벌이 아니라 행정상 제재라는 점은 구분해야 한다.
돈으로 배상을 받는 민사는 형사와 길이 다르다. 가해자 개인에게는 민법 제750조 불법행위와 제751조에 따른 위자료를 청구한다. 회사에는 두 가지를 겹쳐 물을 수 있다. 직원이 업무 과정에서 저지른 가해에 대한 사용자책임(민법 제756조), 그리고 근로계약에 따라 직원의 생명과 건강을 해치지 않도록 배려할 안전배려의무의 위반이다.
여기서 승패를 가르는 말이 "알고도 방치했는가"다. 상사의 모욕적 언행이 회사에 보고됐는데도 아무 조치가 없었다면, 회사는 자신의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골프장 캐디가 상사의 괴롭힘 끝에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에서 법원은 모욕 발언을 알고도 적절히 조치하지 않은 법인의 책임을 인정했고, 이 판단은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괴롭힘 사건에서 회사 책임을 가해자보다 가볍게 보던 관행을 깬 사례로 평가된다.
폭언이 아니라 격무가 원인이라면 다투는 무대가 달라진다. 과로로 인한 사망은 먼저 근로복지공단의 업무상 재해 인정을 받는 것이 출발점이다. 공단은 만성 과로의 기준을 발병 전 12주 동안 1주 평균 60시간 이상 일한 경우로 보고, 52시간을 넘으면 업무 부담을 키우는 요인이 함께 있을 때 만성 과로로 본다. 대상 질병은 뇌출혈·뇌경색 같은 뇌혈관 질환과 심근경색 같은 심장 질환이다.
숫자를 보면 인정의 문턱이 질병 종류에 따라 크게 갈린다. 주 60시간 이상 일한 뒤 뇌심혈관 질환으로 숨진 경우의 산재 승인율은 2022년 기준 93.4%로, 2019년 89.6%에서 꾸준히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반면 과로 관련 업무상 질병 전체로 넓히면 승인율은 38.9%까지 낮아진다. 두 수치는 집계 대상과 기간이 달라 나란히 비교할 성질은 아니지만, 낮은 쪽의 공통 원인으로는 근무시간을 뒷받침할 증거 부족이 꼽힌다. 결국 근무시간을 어떻게 입증하느냐가 관건이다.
세 갈래 모두 마지막에 남는 질문은 같다. 무엇으로 증명할 것인가.
형사에서는 폭언의 구체적 내용과 고의가 쟁점이므로 발언을 담은 녹취, 메신저 대화, 목격자 진술이 중심이 된다. 민사에서는 괴롭힘과 피해 사이의 인과관계, 그리고 회사가 사정을 알고도 방치했다는 정황을 함께 보여줘야 한다. 산재에서는 근로계약서에 적힌 시간이 아니라 실제로 일한 시간이 핵심이어서, 지문 인식 출퇴근 기록이나 업무용 노트북 로그인 기록처럼 실근로시간을 드러내는 자료가 결정적이다.
정리하면 이렇다. 가해자를 형사처벌로 겨냥할지, 회사에 손해배상을 물을지, 과로를 산재로 인정받을지에 따라 필요한 증거가 다르다. 사건 직후 감정에 휩싸여 자료를 정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녹취·메신저·근무 기록을 흩어지기 전에 확보해 두는 일이 세 갈래 모두의 출발선이다. 어느 책임을 먼저 물을지는 그다음에 전문가와 함께 정해도 늦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