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교 간부 9명은 정치인 132명에게 1억8800만원을 불법 기부한 혐의로 기소됐지만 돈을 받은 정치인은 한 명도 기소되지 않았다. 정치자금법은 받은 사람도 처벌하지만, 그 돈이 단체와 관련된 불법 자금임을 알고도 받았다는 '고의'를 검찰이 입증해야 하기 때문이다. 개인 명의로 소액을 쪼개 보내는 방식은 받는 사람의 인식을 흐려 처벌을 어렵게 만든다.
정교유착 합동수사본부는 통일교 전현직 간부 9명을 정치자금법 위반과 업무상횡령 혐의로 기소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2019년 9월부터 지난해 1월까지 전국 통일교 조직을 동원해 국회의원 등 정치인 132명에게 218차례에 걸쳐 총 1억8800만원을 불법 기부한 혐의를 받는다. 그런데 정작 그 돈을 받은 정치인 132명은 한 명도 재판에 넘겨지지 않았다. 준 쪽은 죄가 되고 받은 쪽은 죄가 안 되는,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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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오해를 풀어야 한다. 정치자금법은 준 쪽만 처벌하는 법이 아니다. 정치자금법 제31조는 법인이나 단체가 정치자금을 기부하는 것도, 누구든 단체와 관련된 자금으로 기부하는 것도 금지한다. 그리고 이 규정을 어기면 기부한 사람뿐 아니라 그 돈을 받은 사람도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되어 있다. 받은 돈은 몰수·추징 대상이다. 법 조문만 보면 후원금을 받은 정치인도 얼마든지 처벌될 수 있다는 뜻이다.
문제는 정치자금법 위반이 '고의범'이라는 데 있다. 실수로 걸려드는 죄가 아니라, 그 돈이 단체와 관련된 불법 자금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받아야 죄가 성립한다. 대법원도 불법 정치자금임을 알면서 수수한 경우에 한해 유죄를 인정해 왔다. 그리고 이 '알았다'는 사실은 검찰이 증거로 입증해야 한다. 받은 사람이 스스로 "몰랐다"고 부인하면, 검찰이 그 인식을 무너뜨릴 객관적 정황을 제시하지 못하는 한 처벌하기 어렵다.
이번 사건에서 합동수사본부는 통일교가 관계자 개인 명의로 돈을 잘게 쪼개 여러 차례 나눠 보냈다는 점에 주목했다. 정치인 입장에서는 통장에 찍힌 이름만 보면 평범한 개인 후원자가 소액을 후원한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수사본부는 132명이 "통일교 단체가 특정 목적을 갖고 보낸 돈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고 판단하고 기소 대상에서 뺐다. '쪼개기'는 단순히 한도를 피하는 수법일 뿐 아니라, 받는 사람의 인식을 흐려 처벌을 어렵게 만드는 장치이기도 한 셈이다.
받은 쪽 처벌이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 금액이다. 통일교 관련 금품 수수 의혹으로 함께 수사받은 한 의원의 경우, 수사본부는 받은 금품이 3000만원 이상이라는 점을 확인하지 못했고 공소시효까지 지나 무혐의로 결론 냈다. 금액이 소액으로 흩어져 있으면 대가성도, 인식도 증명하기가 한층 까다로워진다. 단체 자금을 개인 후원처럼 위장해 소액으로 쪼개는 방식이 수사에 왜 그렇게 효과적인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정리하면, 정치자금을 둘러싼 법은 '받았다'는 사실만으로 처벌하지 않는다. 그 돈이 금지된 자금인 줄 알고도 받았다는 '고의'가 있어야 한다. 이 원리는 정치인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선물이나 후원금을 받을 때, 출처가 불분명하거나 특정 단체가 조직적으로 보낸 정황이 보인다면 그 순간부터 '몰랐다'는 항변은 통하지 않을 수 있다. 후원회를 통한 소액 개인 후원은 한도 안에서 합법이지만, 뒤에 단체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 채 받으면 받은 사람도 처벌받는다. 의심스러운 돈은 확인하고, 필요하면 돌려보내는 것이 가장 안전한 대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