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들이 모아 낸 집단 탄원서는 여론을 보여줄 뿐 상대에게 결정을 강제하는 법적 구속력이 없어 결과가 보장되지 않는다. 반면 근로조건 사안에는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시 과반수 동의, 노동조합의 단체교섭처럼 사용자에게 의무를 지우는 절차가 따로 있다. 무엇을 바꾸려는지에 따라 탄원과 공식 절차 중 맞는 통로를 골라야 한다.

먼저 답부터 말하면, 직원들이 모아 낸 집단 탄원서 자체에는 법적 구속력이 없다. 탄원서는 사정을 알리고 선처나 재고를 호소하는 문서일 뿐, 받은 쪽이 반드시 따라야 할 의무를 만들지 않는다. 그래서 같은 요구라도 어떤 통로로 내느냐에 따라 상대가 응할 의무가 있느냐 없느냐가 갈린다. 이 차이를 알고 방법을 고르는 게 핵심이다.

Annisa Nuriddar
탄원서는 개인이나 집단이 기관에 억울함이나 바라는 바를 하소연하는 글이다. 가장 익숙한 쓰임인 형사재판을 보면 성격이 뚜렷하다. 재판부에 제출된 탄원서는 양형을 정할 때 참고 자료로 쓰일 수 있지만, 그 자체가 감형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법조계에서도 탄원서를 두고 기록의 일부일 뿐 법적 구속력은 없다고 본다.
회사나 기관에 내는 집단 탄원서도 성격은 같다. 여러 명이 이름을 올렸다고 해서 문서의 법적 힘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서명 인원은 요구의 무게감과 여론을 보여줄 뿐, 상대에게 결정을 바꾸라고 강제하지는 못한다.
효과가 아예 없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결과가 상대의 판단과 여론에 달려 있어 일정하지 않다. 경영진이 반발 여론을 확인하고 결정을 재검토하는 경우도 있지만, 같은 형식의 탄원서라도 그대로 반려될 수 있다. 즉 탄원은 '설득의 도구'이지 '강제의 수단'이 아니다.
그래서 탄원서로 얻으려는 게 무엇인지부터 분명히 해야 한다. 조직의 방향에 반대 의사를 공식적으로 남기고 여론을 형성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탄원서는 쓸 만한 수단이다. 반대로 근로조건처럼 법이 보호하는 사안을 실제로 되돌리려는 것이라면, 강제력이 있는 다른 절차를 먼저 봐야 한다.
근로조건과 관련된 사안에는 법이 근로자 쪽에 힘을 실어 주는 통로가 따로 있다. 두 가지가 대표적이다.
하나는 취업규칙 변경이다. 근로기준법은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바꿀 때 근로자 과반수,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이 있으면 그 노조의 동의를 받도록 한다. 이 동의는 서면으로 입증돼야 하고, 사용자가 개입하지 않은 자율적 방식이어야 한다. 탄원과 달리 동의가 없으면 변경의 효력 자체가 문제 된다.
다른 하나는 노동조합을 통한 단체교섭이다. 헌법은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보장하고, 노조법은 사용자가 정당한 이유 없이 교섭을 거부하거나 미루는 것을 부당노동행위로 규정한다. 노조의 정당한 교섭 요구에는 사용자가 응할 의무가 있다는 뜻이다. 탄원서에는 없는 '상대의 의무'가 여기에는 있다.
정리하면 방법 선택은 사안의 성격에서 출발한다.
탄원서는 뜻을 모으고 알리는 데 유용한 출발점이다. 다만 결과까지 담보하려면, 그 사안에 법이 어떤 힘을 주고 있는지를 함께 따져 보는 편이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