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 의식을 잃어도 보호자라는 신분만으로 환자의 재산을 처분하거나 고소·합의를 대신할 법적 권한은 생기지 않는다. 치료 동의는 긴급 상황에서 비교적 유연하게 인정되지만 예금 인출, 손해배상 청구, 형사 고소는 성년후견 같은 대리권 확보가 전제다. 급한 재산·소송 문제가 있다면 관할 가정법원의 성년후견 청구 절차와 선임 전 임시조치부터 확인하는 것이 순서다.
중상으로 가족이 의식을 잃으면 보호자는 병원과 가해자, 보험사를 한꺼번에 상대하게 된다. 이때 먼저 부딪히는 벽은 의외로 단순하다. 배우자나 자녀라는 신분만으로는 환자를 대신해 돈을 움직이거나 소송을 걸 권한이 자동으로 생기지 않는다.
우리 법은 성인을 독립된 권리 주체로 본다. 환자가 직접 의사를 밝힐 수 없으면, 가족이 그 자리를 메우려면 법이 정한 대리권을 따로 얻어야 한다. 치료 동의처럼 비교적 유연하게 인정되는 영역도 있지만, 재산과 소송은 문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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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법 제24조의2는 생명·신체에 중대한 위해가 생길 수 있는 수술, 수혈, 전신마취는 환자 본인에게 위험과 방법을 설명하고 동의를 받도록 한다. 다만 설명과 동의 절차 때문에 수술이 늦어져 환자에게 중대한 장애가 생길 상황이라면 이 의무가 면제된다. 응급 수술을 동의서 없이 진행할 수 있는 근거다.
설명과 동의의 상대방은 원칙적으로 환자 본인이지만, 환자가 의사결정 능력이 없는 부득이한 경우에는 가족의 대리 동의가 인정될 여지가 있다. 의식불명이 여기에 해당한다.
문제는 돈의 출처다. 병원비를 환자 본인 예금에서 빼내거나 환자 명의 보험을 청구하려면, 가족이라도 통장 주인을 대신할 권한이 있어야 한다. 치료에 동의하는 것과 환자의 재산을 처분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형사 고소는 원칙적으로 피해자 본인의 권리다. 형사소송법 제225조 제1항은 피해자의 법정대리인이 독립해 고소할 수 있다고 정하는데, 여기서 법정대리인은 친권자나 후견인을 말한다. 성인 환자에게는 보통 친권자가 없으니 가족이 고소하려면 먼저 후견인이 되어야 한다.
흔히 오해하는 지점이 있다. 같은 조 제2항은 피해자가 '사망'한 때 배우자, 직계친족, 형제자매가 고소할 수 있도록 한다. 의식불명은 사망이 아니다. 따라서 이 조항은 적용되지 않고, 가족이 곧바로 고소에 나설 근거가 되지 못한다.
합의와 손해배상 청구도 마찬가지다. 환자 명의로 하는 합의와 소 제기는 법률행위이자 소송행위여서, 대리권 없는 가족이 한 것은 효력을 인정받기 어렵다. 보험사가 합의를 서두르자고 해도 환자의 권리를 처분하는 합의라면 대리권 있는 사람이 해야 뒤탈이 없다.
의식불명 환자를 대신하는 가장 일반적인 수단은 성년후견이다. 질병이나 장애로 사무를 처리할 능력이 지속적으로 결여된 사람에 대해 가정법원이 개시 심판을 하고 직권으로 후견인을 선임한다. 청구는 본인, 배우자, 4촌 이내 친족, 검사, 지방자치단체장이 할 수 있고(민법 제9조), 관할은 환자 주소지 가정법원이다. 원칙적으로 정신 상태에 관한 의사의 감정을 거친다.
특정후견은 특정 사안이나 기간에 한정해 돕는 제도로, 감정 대신 전문가 의견으로 갈음할 수 있어 가볍다. 다만 본인의 의사에 반해서는 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의식불명이라 본인 의사를 확인할 수 없으면 특정후견은 쓰기 어려워, 실무에서는 포괄적인 성년후견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
감정이 들어가면 선임까지 보통 수개월이 걸린다. 사건과 법원에 따라 달라지므로 관할 가정법원에 직접 확인하는 편이 정확하다. 당장 처리할 재산이나 소송이 있다면 선임 전이라도 법원의 사전처분으로 임시 재산관리인을 두는 방법을 함께 문의하는 것이 좋다.
가족이라는 사실은 간병의 자격일 뿐, 환자의 권리를 대신 행사하는 자격은 법원이 부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