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대 대법원장이 9월 22일 청와대의 대법관 후보자 재제청 요청을 거부하면서 대법관 인선이 첫 단계인 제청에서 멈춰 섰다. 대법관은 대법원장 제청, 국회 동의, 대통령 임명의 세 단계를 거치는데, 그 출발점에서 대통령과 대법원장의 권한이 정면으로 부딪친 것이다. 임명동의안이 국회로 넘어가지 않아 후임 대법관 자리는 당분간 비어 있게 됐으니, 갈등이 어느 단계에서 풀리는지가 관건이다.
대법관 한 명이 임명되기까지는 세 기관의 손을 거친다. 헌법 제104조 2항은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정한다. 순서로 풀면 대법원장이 후보를 고르고(제청), 국회가 찬반을 묻고(동의), 대통령이 최종 도장을 찍는다(임명).
권한이 세 곳에 나뉘어 있다는 건 뒤집으면 이런 뜻이다. 대법원장이 제청하지 않으면, 국회가 동의하지 않으면, 대통령이 임명하지 않으면, 어느 한 곳에서든 멈추면 대법관은 나오지 않는다. 이번 충돌이 바로 그 첫 단추인 제청에서 터졌다.

Héctor Berganza
조희대 대법원장은 8월 18일 노태악 전 대법관의 후임으로 손봉기 대구지법 부장판사를, 이흥구 전 대법관 후임으로는 김성수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각각 대통령에게 임명제청했다. 방식은 서면이었다.
청와대는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넘기지 않았다. 대신 8월 28일 조 대법원장에게 다른 후보를 다시 올려 달라고, 재제청을 요청했다. 이유는 "대통령과 대법원장 간 실질적인 협의 없이 서면으로만 제청이 이뤄졌다"는 것이었다.
조 대법원장의 답은 9월 22일에 나왔다. 요청에 응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대법원장이 대통령의 재제청 요구를 공개적으로 거부한 것은 전례가 드문 일이다.
거부 논거는 크게 둘이다.
첫째는 문서의 형식이다. 조 대법원장은 "대통령의 국법상 행위는 국무총리와 관계 국무위원이 부서(副署)한 문서로써 한다"는 헌법 원칙을 들었다. 그런데 8월 28일 자 재제청 요청 문서가 이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다.
둘째는 사유의 부재다. 조 대법원장은 그 문서에 "재제청을 요청하는 구체적 사유와 그 헌법적 근거가 적혀 있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왜 다시 올려야 하는지 헌법에 기댄 설명이 없으니 응할 의무도 없다는 논리다.
실제로 헌법 104조 어디에도 대법원장이 제청 전에 대통령과 협의하거나 합의해야 한다는 조항은 없다. 청와대가 말하는 '실질적 협의'는 관행의 영역이지 명문 규정은 아니라는 점이 조 대법원장 주장의 바탕에 있다.
청와대는 즉각 반발했다. "깊은 유감"을 표하며 대법원장의 거부가 "대통령의 임명권을 무력화"한다고 봤다. 제청권이 임명권 위에 서는 결과가 된다는 우려다.
반대편에서는 정당한 권한 행사라는 평가가 나온다. 헌법이 제청권을 대법원장에게 맡긴 이상, 재제청을 강제할 근거가 뚜렷하지 않다면 거부도 대법원장의 몫이라는 것이다. 같은 조문을 두고 임명권 침해냐 제청권 방어냐로 해석이 갈리는 셈이다.
핵심은 절차가 어디서 멈췄느냐다. 대법관 임명의 세 단계 가운데 이번 사안은 아직 첫 단계, 제청에 머물러 있다. 대통령이 임명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대통령이 다른 후보를 원해 국회로 가는 길목을 잡아 둔 상태다.
임명동의안이 국회에 제출되지 않으면 동의 절차도, 임명 절차도 시작될 수 없다. 조 대법원장이 재제청을 거부하고, 청와대가 기존 후보의 동의안 제출을 미루는 교착이 이어지는 동안 후임 대법관 자리는 비어 있게 된다.
풀리는 길은 몇 갈래다. 청와대가 요건을 갖춘 문서로 다시 요청하거나, 기존 제청을 받아들여 동의안을 국회로 넘기거나, 양측이 협의로 접점을 찾는 경우다. 어느 쪽으로 가느냐에 따라 헌법 104조의 해석 관행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 지금으로선 어느 단계에서 매듭이 지어질지 단정하기 이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