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법 제155조는 '타인의' 형사사건 증거를 없앤 경우만 처벌하기 때문에, 자기 사건 증거를 스스로 지우는 행위는 원칙적으로 벌하지 않는다. 그러나 남에게 삭제를 부탁하거나 공범·타인의 이익이 얽힌 자료를 지우면 교사범이나 증거인멸죄로 책임이 생긴다. 삭제한 자료가 누구의 사건에 관한 것인지, 혼자 했는지 부탁했는지를 먼저 따져야 처벌 여부가 갈린다.
수사를 앞두고 휴대폰 기록을 지우는 것이 곧 범죄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법은 그렇게 단순하게 보지 않는다. 증거인멸죄를 규정한 형법 제155조 제1항은 처벌 대상을 "타인의 형사사건 또는 징계사건에 관한 증거"를 없앤 사람으로 못박고 있다. 조문에 '타인의'라는 말이 들어가 있다는 점이 핵심이다.
그래서 자기 사건의 증거를 자기 손으로 지우는 행위는 원칙적으로 이 죄에 해당하지 않는다. 피고인이나 피의자가 자신을 방어하는 행위까지 처벌하면 방어권을 보장하는 취지와 정면으로 부딪히기 때문이다. 내 사건을 다투는 과정에서 내 휴대폰 메시지를 지웠다는 사실만으로는 증거인멸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Photo by NordWood Themes on Unsplash
형법 제155조 제1항은 타인의 형사사건·징계사건 증거를 인멸, 은닉, 위조, 변조하거나 위조·변조한 증거를 사용한 사람을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여기서 '인멸'은 증거를 물리적으로 없애는 것만이 아니라, 숨기거나 내용을 조작해 증거로서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행위까지 포함한다.
대상은 이미 벌어진 사건의 증거여야 한다. 수사나 재판, 또는 국가기관의 징계 절차와 관련된 자료가 문제 된다. 민사소송에서 불리한 자료를 지우는 행위는 이 조문만으로는 처벌하기 어렵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경계선은 '누가 했느냐'에서 크게 갈린다. 친구에게 "내 폰 좀 없애 달라"고 부탁한 경우, 부탁을 받고 실제로 지운 친구는 타인의 사건 증거를 없앤 것이므로 증거인멸죄로 처벌된다. 그리고 부탁한 본인은 직접 지우지 않았더라도 증거인멸 교사죄로 책임을 질 수 있다.
대법원은 1965년 전원합의체 판결(65도826)에서 자기 형사사건 증거를 없애려고 타인을 교사해 죄를 범하게 한 사람에게도 교사범의 책임을 지우는 것이 맞다고 보았다. 다만 일부 법률 해설은 정범인 본인의 죄가 성립하지 않으니 교사도 성립할 수 없다는 반대 논리를 소개하기도 한다. 자료마다 설명이 엇갈리지만, 판례의 기본 입장은 부탁한 사람을 교사범으로 본다는 쪽이다.
자료의 성격도 변수다. 공용 컴퓨터 문서나 공동 명의 계좌 내역처럼 내 사건과 남의 사건이 뒤섞인 증거를 지우면, 타인의 이해가 걸린 부분은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내 것'이라고 생각한 자료가 사실은 공동의 자료였던 경우가 실무에서 자주 문제 된다.
같은 삭제 행위라도 유무죄는 고의에서 갈리는 일이 많다. 법원은 겉으로 증거를 없앤 것처럼 보여도 삭제의 동기와 경위, 관련자 진술, 행위자의 내심까지 종합해 '증거를 없애려 했다'는 인식이 있었는지를 따진다. 평소 보안 관리 차원에서 주기적으로 지워 온 자료라면 인멸의 고의가 부정될 수 있다.
이 지점이 1심과 2심의 결론이 달라지는 대표적 통로다. 우리 형사 항소심은 1심 기록을 그대로 두고 다시 심리하는 속심 구조여서, 같은 증거를 놓고도 고의와 진술의 신빙성을 새로 평가할 수 있다. 1심이 '자기 사건 증거여서 무죄' 또는 '고의가 없다'고 보았더라도, 2심이 그 자료에 타인의 이해가 섞여 있었다거나 지시자가 실행에 함께 가담한 공동정범에 가깝다고 판단하면 결론이 뒤집힌다. 교사냐 공동정범이냐의 구별, 자료가 누구의 것이냐의 판단이 한 끗 차이로 갈리기 때문이다.
행동 기준은 비교적 분명하다. 다음을 먼저 확인해야 한다.
정리하면, 자기 사건 자료를 혼자 조용히 정리하는 것과 타인을 끌어들여 자료를 없애는 것 사이에는 큰 법적 간극이 있다. 경계가 애매하다고 느껴지는 순간이라면 삭제보다 형사 전문 변호사의 자문이 먼저다.